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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말씀 묵상

2021.01.13(수) 말씀 묵상, 요5:19-29

by RADICAL 2021. 1. 13.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한복음 5:19-29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 자신을 박해하는 유대인&종교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요5:18 말씀을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고 심지어 죽이고자 했던 이유가 나와있다.

요5: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감히 하나님의 이름도 제대로 부를 수 없었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분노로 치가 떨릴만한 일이다. 갑자기 나타난 랍비 하나가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이고,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라고 말하는데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의아한 것은 이미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협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는 그들에게 더 심각한 말씀을 선포하신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메시지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주권적 권세, 오직 이 세상에서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그 권세를 자신에게 주셨다는 메시지였다. 심지어 그 권세는 다름 아닌 '심판과 부활의 권세'였다. 이 말씀을 전해 들은 유대인들의 반응이 상상이 가는가? 이후 예수께서 계속적으로 공생애 사역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예수를 잡아 고문하고 모든 유대인들이 보는 앞에서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대체 왜 이런 갈등을 일으키셨을까?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은 중요한 것이 있다. 사실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선포하는 것, 심판과 부활에 대해서 그들에게 선포하시는 것은 병자와 약한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를 돕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아니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궁극적으로 행하고자 하셨던 일은 기적과 표적 같은 것들이 아닌 심판과 부활에 대한 선포였다는 말이다.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것은 이 메시지를 유대인들에게 전하기 위한 디딤돌에 불과했다.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고치셨을 수도 있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세를 '그보다 더 큰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요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가지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이미 청중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과 표적들로 인해 충분히 놀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그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큰 일을 자신을 통해서 행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그 큰일이 바로 심판과 부활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은 예수께서 행하신 선행, 기적과 표적들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행하실 더 큰 일인가? 

 본문 말씀은 우리가 진정 주목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를 곱씹게 한다. 우리가 진정 어디에 소망을 두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은 이 땅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다.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서 찾을 수 없다. 오직 부활과 영생에 우리의 진정한 소망을 두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어떤가?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의 가치를 따르고, 세상이 주는 부와 명예를 원하고, 세상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탐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세상의 성공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스도인 역시 입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노래하고, 영생을 노래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전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교회가 진정한 청지기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이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세상에서 번성하는 것에 모든 목적이 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생명으로 옮겨진 자 다운 삶을 사는 것이지, 생명으로 옮겨지기 위해 애쓰는 삶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자꾸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우리가 믿는 예수께 모든 심판의 권세가 주어졌고(27절), 모든 이들은 그의 음성을 듣고 생명의 부활 혹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될 것이다(29절). 그런 우리가 왜 이토록 세상적인 일들에, 세상적인 가치에 욕심을 두고 살아갈까? 내 삶을 돌아보니 마음이 답답하다. 목사인데도 물질을 탐하고, 이 땅에서 번성하기를 원하고, 명성을 얻기를 원한다. 누구보다 심판에 대해서, 부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내 삶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오늘, 바로 지금 내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행위에 따라 생명의 부활 혹은 심판의 부활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곧 올 것이다.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나이기에 내 삶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에 합당한 삶의 모습과 행실이 뒤따라야 진짜인 것을 안다. 행위 구원이 아니라 이미 얻은 구원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도록 만드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도하고 간구한다.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신비한 일들, 기적, 표적과 같은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세상에서 인정받고 높임 받는 것에 욕심을 내지 않고 오직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눅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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